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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의 가치

기쁨한스푼 2024. 10. 3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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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의 가치

 
수치심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난 자리. 한창 이야기꽃을 피웠을 때 당신은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농담을 던진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마침내 누군가 입을 연다. “아, 그거 재밌네.”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 이야기가 시시하게 가라앉았을 때, 당신이 느꼈던 감정은 무엇인가? “그건 수치심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조지프 버고는 ‘수치심을 반대하는 시대정신’을 우리 시대의 특징으로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치심을 뭔가 크고 나쁜 것, 우리가 절대로 느끼지 않길 바라는 감정으로 생각한다. 수치심을 느끼는 것을 괴로울 만큼 강력한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수치심은 가벼운 불쾌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선입견과 다르게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평범하고 흔한 경험이며, 언제나 해로운 것만도 아니다. 만약 출근 시간에 지각을 해서 상사에게 핀잔을 듣게 되면 수치심을 느끼겠지만, 그 감정은 다음에는 좀 더 일찍 일어나 회사에 갈 준비를 하도록 이끌어준다. 심리 치료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조지프 버고 박사는 35년간의 임상 경험과 연구를 토대로 이 책을 집필했다. 생후 1년간 부모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어려움을 겪는지 설명하고, 지속되는 수치심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점령하는지 이야기한다. 또한 내면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내담자들의 방어 기제와 자존감을 길러나가는 연습 과제를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단단한 내면을 기르는 과정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가끔, 또는 만성적으로 수치심에 시달리며 자존감 문제로 애쓰는 상황에 있다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조지프 버고
출판
현암사
출판일
2019.11.11

 

수치심은 신체적 고통과 동일하다. 수치심은 사회적으로 평가 절하되는 상태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그러한 사회적 추방의 상태는 결국 고립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의 기본적인 동물성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며 이 능력이 우리를 문명화한다.. 모든 문화권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특정한 규범과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우리 안에 내재된 수치심을 느끼는 능력을 사용한다. 아마도 사회적인 결속력을 다지고 사회 내 공공의 이익에 어긋나는 태도를 지양하게 만들어, 생존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자존감의 씨앗은 유년기의 부모가 마련해주는 기쁨과 칭찬이라는 비옥한 토양 내에서 뿌리를 내린다. 하지만 자존감이 계속해서 자라나려면 적절한 나이와 감당할 수 있는 양의 건강한 수치심의 경험이 필요하다.

성인들도 건강한 자존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수치심에서 아예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치심의 경험을 용인하고 버텨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수치심에서 회복될 수 있는 탄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필요할 경우 그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받지 못한 채 소외된

우리는 실제 아무런 규범이나 가치를 어기지 않았더라도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을 느낄 때면 수치심을 경험한다. 수치심의 핵심은 단절감의 정서다. 수치심은 단절감의 원인이기도 하고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

 

거기에 더하여 수치심은 실망의 정서다. 수치심은 자부심의 정반대가 되는 개념이며, 자기 자신 또는 우리에게 중요한 타인들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느껴지는 고통이다. 심지어 그 기대치가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완벽주의적인 것이 아니어도 우리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실망할 때마다 어느 정도의 수치심은 불가피하게 느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수치심은 실망감과 단절감의 정서다.

 

-되돌려받지 못하는 사랑의 수치심

 

타인과 연결되길 원하는 최초의 욕구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발현된다. 되돌려받지 못하는 일방적인 짝사랑은 수치심의 패러다임 중 근본적이고 가장 고통스러운 요인이며, 삶의 어느 단계에서라도 우리를 괴롭게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구나 그 사랑을 되돌려받길 원한다. 우리는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 특히 낭만적인 관계에 있는 동반자에게 우리가 기쁨의 원천이길 원한다. 우리는 그 사랑을 쟁취했을 때 완전히 성취감을 느낀다. 자기 자신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반면 그 사랑을 얻는데 낙담했다면, 그것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

사랑하는 양육자가 자신보다 형제 또는 자매를 더 총애하는 것을 깨달은 아이들도 이런 종류의 수치심을 경험한다. 우리의 유전 성향은 사랑에 마주 보답해줄 사람을 사랑하고 그와 연결이 되고 싶다. 그러한 그리움이나 바람이 낙담을 겪고, 서로 연결되는 데 실패할 때, 그 감정을 뭐라고 부르든지에 관계없이 우리는 필연적으로 수치심을 경험한다.

 

수치심의 어휘들 (짝사랑의 경험을 수치심과 언급할 때 묘사되는 전형적인 표현들)

 

-상처받은, 거절당한, 퇴짜맞은

-사랑받지 못하고 받을 자격도 없는

-못생긴(충분히 매력적이거나 날씬하지 않은)

-충분히 남성적(혹은 여성적)이지 않은

-창피를 당한

-아무도 원치 않는(무가치한 혹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무시당하거나 괄시받는

-중요하지 않은, 간과된 혹은 잊힌

이런 설명은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을 얻는 것에 실패했거나, 친구에게서 어떤 일에 대한 인정을 받는 것에 실패했을 때의 고통스러운 자의식을 담고 있다.

 

-배제의 수치심

-우리는 속하고 싶은 집단으로부터 소외당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도 수치심을 느낀다.

 

중고생들은 종종 그들이 인기가 없다거나, 멋지고 잘 나가는 아이들 중 하나가 아니라거나, 혹은 어설픈 패배자 같다는 느낌에 괴로워한다. 속하기를 바랐던 집단의 외부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수치심의 계보에 들어가 있는 감정을 환기시킨다.

직장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모임의 내부자에 비해 자신이 덜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고령 노인이 독거하면서 그가 이전에 속해 있던 커뮤니티로부터 고립될 때 느끼는 수치심은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깊은 영향력을 미친다.

배제의 수치심은 실제로는 무리에서 배제된 적이 없더라도 내적인 이유로 인해 일어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과 다르다고 느끼거나, 사물을 보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면 속한 무리에서 벗어나 있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구도 나의 열정이나 흥미에 공감해주지 않을 때도 외부인처럼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단절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그로 인해 외로워질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가 되도록 내재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살아가는 내내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갖는다. 그리고 그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수치심의 계보에 속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수치심의 어휘들

 

- 나는 이렇게 느낀다.

- 외부인 혹은 외톨이처럼

- 외롭고 이해받지 못하는 것처럼

- 내가 여기 속하지 않는 것처럼

- 인기 없고, 멋있지 않고, 환영받지 못하는 것처럼

- 소외되고, 따돌림을 당하고, 배제된 것처럼

-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 된 것처럼

- 2군에 속한 사람이거나 덜 중요한 존재가 된 것처럼

- 사람들이 나를 피하고 있는 것처럼

- 간과되고, 잊히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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