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태도
지은이 에릭 메이젤 (미국의 저명한 창의력 컨설턴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심리치료사, 오리건 대학과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등에서 심리학, 문학,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창의적 글쓰기로 석사학위,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꾸준히 잘 쓰기 위해 다져야 할 몸과 마음의 기본기
우리는 일곱 살 때쯤 남들과는 다른 것을 보고, 또 열다섯 살 무렵 그보다 더 큰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렇게 본 것들을 종합해 훌륭한 글을 한 편 쓰는 것이 우리의 운명 중 하나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천재들이다. 보이는 대로 말하고 느끼는 대로 말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놀랍고 경이로울 때가 많아서 그것을 다 담아두고 싶지만, 듣는 어른들은 그 단어, 문장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는 것 같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이메일을 작성하는 건 '작문'이고 '전쟁과 평화'를 쓰는 건 '창작'이다. 1만 개의 이메일을 써서 모은다고 위대한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 매일 250 단어씩 혹은 매일 한 시간씩 글을 쓴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어쩌면 창작은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뗀 다음에 눈을 딱 감고 뛰어내리는 것이 가깝다. 흥미로운 소설, 극본, 시, 책을 쓰고자 하는 작가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의 마음을 병뚜껑처럼 쉽게 열고 닫을 수 없고, 자신의 자아를 외투처럼 쉽게 벗어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작가라면 달라져야 한다. 현재의 존재 방식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즉 창작에 적합한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창작에 적합한 사람으로 바뀌려면 가장 먼저 일상적 자아를 벗어버려야 한다. 즉 내가 나의 가능성이 되어야 한다. 글쓰기를 마음의 가장 앞이나 중심에 꺼내놓으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글을 쓰겠다는 목적의식을 유지한다면 실제로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는 행동이 나타난다.
LESSON:
작가의 인생은 그가 내리는 지속적인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선택은 글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TO DO: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집이 쉬는 공간이자 일하는 공간이라면 집에 머무를 때의 내 생활을 어떻게 계획할 것인가?"
"오늘 나는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글을 쓸 거야" 같은 매일 간단하면서도 구체적인 글쓰기 계획을 세우자.
일주일에 며칠은 간단하고 구체적인 마케팅 계획을 세워보자. 예컨대 "오늘 나는 두 개의 샘플 칼럼을 써볼 거야!" 같은
글을 쓰기로 선택하자.
글을 쓰는 사람은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끌어모아 작업에 몰입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책은 바로 '단순해지는 것(simplicity)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고요함과 약간의 체계 그리고 약간의 경외심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술실보다는 성전이 더 적절한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의 어려움
책을 쓰는 데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책을 쓰고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책'이란 단어는 글을 쓸 가능성을 파괴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전쟁과 평화'나 '죄와 벌'과 같이 범접할 수 없는 대작들 사이에 자신의 책이 꽂혀 있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곧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 그가 쓸 건 책이 아니라 원고, 그것도 초고일 뿐이다. 책은 시행착오를 수없이 거친 후에나 나온다. 아주 한참 후에 나올 수도 있다. 그가 써야 할 책 같은 건 없고 써야 할 초고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노력이지 탁월함이 아니다.
**맞다. 단지 끄적거림을 시작을 하면 되는데, 처음부터 책을 쓴다는 생각이 시작도 못하게 가로막는 것이었다. 작가도 무조건 쓰기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에게 글을 쓰는 생활, 지금 하는 글쓰기 프로젝터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라고 선언으로써 글쓰기 공간은 존중할 수 있다. '존중'은 참 재미있으면서도 묵직하고 어려운 단어다. 이 단어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여러 단어 중에서도 가장 우위에 놓을 것이라 장담한다. 당신이 '존중'을 믿는다는 사실을 존중하라. 그것을 중심으로 당신의 글쓰기 인생을 이끌어나가라. 형편없는 글일지언정 반드시 쓰라. 다른 방법은 없다. 최선을 다해 당신의 글쓰기 공간을 존중하라.
10초 안에 집중하는 법
이 기술에는 단순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호흡이고 하나는 생각이다.
일단 5초간 숨을 들이마시고 5초간 숨을 내뱉을 수 있을 때까지 심호흡을 연습해야 한다. 그런 다음 호흡에 생각을 삽입한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생각의 반 정도를 조용히 떠올리고 숨을 내뱉으면서 생각의 나머지 반 정도를 되뇌면 된다.
** 이 10초 동안의 숨쉬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갖다 준다.. 이전에는 어렵고 무서워서 해낼 수 없었을 것 같은 것도 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글쓰기에 온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비관주의에서 낙관주의로 달라질 수 있고, 일을 자꾸 미루는 성향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성향으로 바뀔 수 있다. 걱정도 사그라질 수 있다. 호흡을 하는 법에 대해서는 더 공부해 볼 수도 있다.
감정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표시이다. 감정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내적 동기이며 인생을 벼리는 날카로운 칼과 같다. 당연히 우리는 감정과 더불어 살아가길 원한다. 가끔은 분노하고 싶을 때도 있고 가끔은 피할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가끔은 인생을 말도 안 되게 비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할 것이며, 우리가 가진 가장 어두운 감정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식은 이러한 모습이 아니다. 초콜렛을 자제해서 먹듯이 어두운 감정 또한 자제하면서 수용해야 한다. 달콤한 초콜릿과 마찬가지로 씁쓸한 감정도 우리 건강에 오래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챙김
‘마음 챙김’이라는 용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새롭게 정의되며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마음 챙김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내 생각을 관찰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마음 챙김의 여섯 가지 원칙으로는
-두려움 없이 내 생각을 관찰한다. 온갖 변명, 스스로 미치게 만드는 모든 방식의 도피, 비밀스러운 불평, 고통의 근원. 이 모든 것이 당신이 하는 생각 속에 들어 있다. 당신의 생각을 인식하기 위해 깨어 있으라.
-자신이 하는 생각에서 한 발 떨어져 보자. 이 말은 약간의 호기심과 낙관적 확신 그리고 철학적 사유로 자기 생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관찰하라는 의미다. 즉 자기 생각에 짓눌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을 찬찬히 뜯어보자. 판단은 없이 현명한 재판관이 되어보자. 잠시 멈춰서 그 생각의 진실이나 잘잘못을 따져보고 숨은 뜻을 이해하라.
-자신이 내릴 평가에 근거해 자신의 의지를 다시 말해보자. 즉 평가 내리기 전의 생각에 자신이 새롭게 이해하고 결심한 내용으로 응답하라는 뜻이다.
-마음을 비우고, 뇌 속 신경세포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창작할 준비를 하자. 일반적인 마음 챙김은 단순히 생각을 관찰하는 것이지만 창조적 마음 챙김은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이 없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야 한다. 창조적 아이디어들이 샘솟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작업에 몰입하자.
가 있다. 당신의 생각이 어떠한 고통, 힘겨움, 불안, 의심, 절망도 없는 완벽한 때란 결코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 창조적 마음 챙김을 연습해야 한다. 그게 작가의 내면을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면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내면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글이란 결국 욕망이 창조해 낸 문장들로 이루어진다.
욕망이 꺾이면 세계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도 꺾인다. 반면 욕망이 되살아나면, 어느새 언어의 세계에서 뛰놀고 있다. 욕망에 집중하자! 욕망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눈은 언제나 아이디어와 글이 샘솟는 근원지를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춤추는 욕망이 없다면 작가들은 줄줄이 무기력해질 것이다. 마치 양로원 복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들처럼. 불타는 욕망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존중하자. 그리고 격렬해지자.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당신만의 의식적 자아 성찰 훈련
"내 삶을 이처럼 깊게 돌아보지 않았다면 나는 갇혀버렸을 것이야. 완전히 갇혀서 내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겠지. 글을 쓰려면 먼저 자신과 관계를 맺어야 해. 치어리더나 감독이 될 게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건을 맡은 사설탐정이 되어 증거를 뒤지고 단서를 찾아야 해. 당신은 미스터리다. 동시에 탐정이다. 당신만의 의식적 자아 성찰 훈련을 시작하라.
배경은 상상 속에 있는 공간으로 작가의 의도를 품고 있으므로 인물, 줄거리, 주제만큼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왜 이 장소에만 가면 이런 기분이 드는지, 예컨대 행복한지, 슬픈지, 들뜨는지, 지루한지, 초조한지, 흥분되는지, 절망적인지, 황홀한지를 탐구하고 싶어.
매력적인 글의 첫 문단을 쓸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 두 가지
첫 번째는 앞으로 쓰일 글이 어떻게 흐르게 될지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는 문단을 만드는 것과 두 번째는 분명하게 로드맵을 제시해 주는 방법이다. 첫 번째 문단에서 로드맵을 제시할 때는 독자에게 내용을 너무 많이 공개함으로 해서 스펜스를 죽이거나 하이라이트를 노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글쓰기는 해석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아무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늘 행복하고 소소한 이야기만 하고 싶어서 순진한 척 연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고 안 하고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그때도 당신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으며 독자들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는 모두 내적, 외적으로 골치 아픈 건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의 압박을 스스로 받는다. 우리는 곧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데 실패한다. 일단 진실이 탈출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면 그때부터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막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워서다.
"인생이란 나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들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의미를 만든다. 그전에 존재하는 건 다만 의미의 가능성뿐이다. 불안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인간의 유전적 목표이다. 인간의 유전적 목표이다. 하지만 우리 유전자는 어두운 터널을 피하라고 말하고, 우리의 휴머니티는 그곳에서 내 글을 찾을 수만 있다면 뒤져보라고 말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안을 피할지 아니면 진짜 삶에 수반하는 불안을 끌어안을지에 따라서 당신의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 불안을 최소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면 절대 ‘게릴라’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선택하자. 선택 자체가 불안을 일으키지만, 그래도 의미를 창조하려면 매번 의식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안고 있다면, 그 일을 하기로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수밖에 없다. 당신은 선택하기로 선택해야 한다. 의식적 선택이 없는 하루는 무의미한 하루와도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위대한 작업이다. 자기 자신을 글 쓰는 사람 모드로 바꿔야 하는 것이고, 어느 장소든 존중을 하고 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내 안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글이 나올 수 있으므로 항상 자신을 통찰하고 호흡하는 마음 챙김 과 같은 명상도 필요하다. 그리고 마음 안의 불안 때문에 의미창조자의 역할을 선택하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