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내린 아침, 흙 위를 걷다
― 지금 이 순간, 나를 선택하는 산책
1. 비의 흔적을 따라 걷다
어제 내린 비로 길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
대림의 흙길을 따라 걷는다. 오랜만에 흙을 밟는다. 발바닥이 흙을 기억해낸다. 묘하게 익숙하고 따뜻한 감각.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 흙은 나를 반겨준다.
2. 자연은 늘 제자리에 피어난다
공원 근처의 작은 길에는 여름 강아지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이름 모를 노란 꽃도 피었고, 메꽃은 울타리를 타고 조용히 올라간다. 남색의 달개비꽃은 수줍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풀잎 위에는 이슬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반짝인다. 모든 것이 조용하지만, 동시에 생생하다.
3. 들리는 것들, 깨어나는 아침
까치가 울고, 여치와 매미 소리가 겹쳐 들린다.
자연은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주변엔 일찍 일을 시작한 사람들의 인기척도 들린다. 그 속에서 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3. 몸이 먼저 말을 건네는 순간
걷는 동안 문득,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느껴진다.
뒷목이 뻣뻣하고, 어깨가 굳어 있다. 평소엔 느끼지 못하던 뭉침이, 지금 이 순간에는 또렷하다.
몸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자세가 어떻게 틀어져 있는지까지도 감각이 알려준다.
4. 자세를 고치고 마음을 세운다
자세를 고쳐본다.
고개를 들고, 시선을 앞으로 두고 걷는다.
등이 펴지는 느낌이 든다.
바람이 온몸을 스치듯 지나간다. 생각보다 시원하다.
이 감각, 이 바람.
밖에 나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실내에 있었다면 “왜 이렇게 더워” 하며 짜증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침 바람은 시원하고 고맙다.
5.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우리는,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감각을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만
느끼고, 선택하고, 기억할 수 있다.
그 외의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6. 작지만 분명한 선택들
빨리 걸을 것인지, 느리게 걸을 것인지.
웅덩이를 밟을지, 옆으로 비켜갈지.
꽃 앞에서 멈출지, 그냥 지나칠지.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만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방식이다.
7. 계절이 흐르듯, 나도 흐른다
벌써 어디선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풀벌레들의 울음이 시작된 걸 보면, 계절은 어느새 또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계절의 시작과 끝을 통제할 수 없다.
다만,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8. 나를 돌보는 걷기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느끼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나를 돌보듯 걷는 것.
그것이 오늘 아침 내가 배운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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